이강욱 : 미세한 감성이 투여된 거시적 평면 - Lee Kang Wook

Criticisms

이강욱 : 미세한 감성이 투여된 거시적 평면

2011.09

류지연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Untitled-11022〉, 2011, 캔버스에 혼합매체, 95 x 160 cm ©Artist

2000년대 초중반 극사실회화와 서사성에 기반을 둔 경향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이강욱의 작품은 드로잉의 맛과 섬세한 표면처리로 인해 추상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으로 보여지는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동안 지속되었던 ‘Invisible Space’ 에서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 주변환경, 그리고 자신이 바라보는 자연, 우주에 대한 생각을 담은 화면을 그리고자 하였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생명체의 기본단위로서 세포이미지에 주목하게 되었고 근접화된 작은 세포 이미지 속에 무한한 공간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 화면에는 미시와 거시적인 세계관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었다.

파스텔 톤의 배경 위로 펼쳐진 세포이미지는 세부묘사가 모호하지만 분명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부드러운 곡선과 표면의 반짝이는 유리구슬은 유기체적인 망의 복합성과 확장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중층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점과 선, 그리고 색과 빛의 관계는 그가 지각한 세계를 완결된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연속적이며 긴장된 상태의 공간을 창조하였다. 서로 얽혀져서 화면 밖으로 확장하는 세계는 일상의 세계를 재현한 듯 하지만 무한한 감각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
 
이렇듯 완성된 양식을 보여주었던 이강욱은 작업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2009년 뒤늦게 유학을 감행한 이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하고자 귀국하였다. 지난 2년간 제작된 작품을 보고서 필자는 작가에게 물어본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유학하는 기간 동안 행복했는가?”였다. 작가에게는 다소 의미없는 물음같이 들렸겠지만 그는 뒤늦게 시작한 유학생활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라고 답했다. 필자가 그에게 그렇게 물었던 이유는 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상당히 많이 변화하였음을 보았던 것이다.

유학을 경험한 작가라면 누구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름 완결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던 작업의 단계에서 작가가 한 차원 다른 작업을 보여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자잘한 원형들은 미묘하게 농담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도 뚜렷한 색면과 윤곽선이 화면의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이 근작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었다.

이전 작품의 주된 특징이었던, 표면 질감을 결정지웠던 유리구슬이 모두 사라짐으로써 흰 여백의 비어있는 공간에 순수한 조형요소만이 드러나게 되었다. 더욱이 화면이 매끄럽고 밝아졌다는 느낌을 초월하여 화면의 구성요소가 더욱 선명해지고 내용 역시 풍부해졌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작가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이강욱의 ‘Untitled’라는 근작시리즈가 변화하게 된 단초는 내부세계로 향한 “작다”’와 “크다”라는 단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선의 방향과 거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해서 보는, 그리고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과정에서 점점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시선과 거리에 의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미지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그러한 시선의 이동에 따른 변화와 거리감을 화면에 담고자 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이제 결과론적이기보다는 과정 혹은 목적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시선으로 인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아주 작은 원형드로잉은 화면의 전면화를 이루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액션페인팅의 빠르고 큰 동작은 아니지만 작가의 제스츄어에 의한, 제스츄어가 담긴 작은 원형의 선들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반영하고 있다. 작은 원형드로잉은 작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해왔던 작업들로서 “내가 누구일까?, “나를 이루는 최소단위가 무엇이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시각적 단위로서 그려지게 되었던 세포 이미지는 이제 작가가 펼치는 사유세계의 전개과정이자 사물이 지닌 여러 정보를 상징하게 되었다.
 
섬세한 손짓의 흔적으로서 원형드로잉은 점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과 정반대로 기하학적 도형은 정확한 기준에 의한 발견과 같이 화면 밖으로 점점 더 튀어나오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하도형이 각각의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면 정적인 개념으로 취급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도형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면서 어떤 역동적인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형태가 겹쳐지게 되면 불완전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3차원적 공간의 환영을 만들기 십상이지만 이강욱의 화면에서 유기적인 이미지와 기하학적인 이미지는 각각 균등한 의미를 지니고서 균형을 이루고 있게 됨으로써 입체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회화의 평면성을 여전히 놓치지 않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성격이 다른 도형이 겹쳐지더라도 유사한 형태이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 간에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색면 역시 덩어리져서 무게감을 가지지도 않고 윤곽선과 함께 위협적이지 않으면서 상호 중첩과 상호침투하고 있다는 특징 역시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데 있어 한몫을 더하고 있다.
 
원래 명료하고 정확한 표상으로서 기하학 형태들은 그 자체로서 완벽한 형태를 상징하고 있으며 누구나 인지하는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나머지 자잘한 원형드로잉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완성적인 상태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자 감성의 표출인 것이다. 게다가 윤곽선은 원래 기하형태를 묘사하는 것이므로 손에 의한, 심리적이고 자연적인 가장 단순한 이미지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화면의 여백 공간은 기하학층과 유기적 원형층 사이의 접점이자 그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는 전체로서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조형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작은 원형의 군집형태는 근접거리에 위치한, 유동적인 요인이 미묘하게 교차하여 안정과 불안정이 뒤섞인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한 바탕으로 배경으로 하여 뚜렷한 형태를 지닌 색면과 윤곽선은 여백의 빈 공간과 자잘한 원형의 질감으로 대비되는 요소로서 부각되어 자칫 배경과는 별개의 분화된 구조를 지닌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질감, 방향성, 크기, 색채, 형태 등 상호이질적인 요소의 조화를 위하여 혹은 도형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성의 감각이 요구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으나 이강욱의 작품은 그러한 관점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오히려 감각의 표현으로 대변되는 유기적인 이미지들과 객관적인 대상으로서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함께 인지하고 볼 수 있는 다중적인 감수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객관성과 주관성에 대한 이분법적 원리는 그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으로서 불변하는 원칙과 감성적인 감정이라는 양자의 공존이 일치하는 것이야 말로 완전무결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이강욱은 자동기술법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절제되고 계획된 작품을 통해 양극단의 상태이자 동시에 중성화된 상황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숙경은 이러한 특성을 “단순한 이원론을 초월한 반대적 세계의 융합, 혹은 합성이라는 개념”이라고 설명하면서 “대립적 세계들 내에서 내재하는 일종의 우주적 질서를 탐색하는 듯하며, 이는 통제된 듯 하면서도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는 패턴과 형태들이 화면 안에서 작가의 기본 구도를 확장시키는 모습으로 발현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형체의 겹쳐진 효과, 원형 드로잉의 결합은 특정하게 고정된 시점없이 전체적으로 어떤 질서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성의 기운을 표출하고 있다. 더욱이 형태와 색채가 조합되는 변수에 의하여 화면은 군집/개체, 불규칙/규칙, 긴장/이완, 경계/허술, 복잡/단순 등과 같은 복합적인 특징으로 야기되는 공명이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화면의 이미지는 캔버스의 크기에 상관없이 확장, 혹은 수축되는 전개가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강욱의 근작이 단순히 시각적 자극과 패턴의 순조로운 조화에서 비롯된 유희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실제적인 조형작업으로 펼쳐보이는 확고한 주장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화가란 아주 작은 방법론을 사용하여 효과적인 결과를 생산하고 그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이며 이때 회화는 화가의 가장 솔직한 자기고백이자, 다른 분야보다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전달되는 즉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 아래 이강욱은 회화의 평면성, 순수성에 대한 더욱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짧지만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통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성격과 관심은 어떠한지, 화가로서 지녀야할 태도와 행동은 어떠할지” 등에 대한  생각을 견고히 하였으며 이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근작은 작가의 현재 삶에 대한 표현임과 동시에 향후 작품의 전개과정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예고편인 셈이었다.

이강욱의 근작이 지난 10년간 작업해온 화면과 유사한 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작업과 비교하는 과거의존적인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보일 것인가라는, 미래지향적 기대를 가져본다.